CBT 기념 유저 리뷰
오타쿠 입장에서 본 CBT 테르비스 세계관 느낌
클로즈 베타 기준 테르비스의 세계관 평가
선 결론: 현재 베타 테스트까지 진행된 시점에서, 테르비스는 서브컬처 수집형 게임치고는 내러티브와 몰입감이 아쉽다.
테르비스는 명백히 서브컬처를 지향하는 수집형 게임이다.
이 게임의 주 타겟층은 블루 아카이브, 니케, 스타레일, 페그오 등을 즐기는 유저들이다. 필자가 실제 테르비스 일본 출시를 기다리는 일본 유저들과 대화를 나눈 결과, 블루 아카이브나 니케를 플레이하고 있는 유저들이었다.
필자가 앞서 언급한 게임들의 공통점은 모두 서브컬처 수집형 게임인데, 예시로 언급한 게임들은 저마다의 독특한 세계관과 매력적인 캐릭터 서사를 지니고 있다.
학원 판타지를 바탕으로 어른과 학생이라는 주제로 따스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블루 아카이브
아포칼립스 세상에서 전투 인형인 니케와 지휘관이 어둡고 암울한 환경에도 역경을 뚫으며 유대감을 쌓아가는 니케
스페이스 오페라 풍의 우주 판타지 세상에서 개척의 의지를 이어받은 개척자가 동료들과 함께 우주에서 활극을 펼치는 스타레일
일본에서 오래되고 사랑받는 페이트 시리즈의 IP를 바탕으로, 마스터가 다양한 시공간을 오가며 영령들과 유대를 쌓아가는 페그오
위 게임들은 작성일인 2025-06-14 기준, 일본 IOS/안드로이드 판 매출 랭킹에서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는 게임들이다. 언급한 게임들은 학원 판타지/아포칼립스/스페이스 오페라/페그오 IP 세계관이라는 문자로 요약할 수 있는 배경을 지니고 있다.
그에 비해 테르비스는 어떠한가?
[킥의 부재]
테르비스 세계관은 서브컬처를 향유한 사람에게 쉽게 그려지는 스테이지다.
신분제가 존재하는 중세 배경의 세상에서, 마법으로 발달한 문명을 가진 세계다. 여기에 루체라는 특이한 물건이 있다.
이 신비로운 물체는 대기의 마테르(마나)를 끌어 모으는 성질을 지녔으며, 신비한 현상을 초래한다. 그 형태는 몹시 다양하며, 존재 자체만으로 마물을 물리친다.
그렇기에 루체는 여신 테르비스가 이 땅을 사랑하는 증거이기도 하며, 테르비스의 세계는 루체를 중심으로 이룩했을 것이다.
즉 루체는 테르비스 세계관을 다른 이세계 중세 판타지 소설과 구분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하지만 스토리를 진행하다 보면, 루체의 대단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마치 오드아이 고양이가 말하는 대로 *아가는, 스토리 진행의 편의를 위해 추가한 장치 같은 느낌이 든다.
물론 주인공에게는 루체를 *아야 할 이유가 있다.
현실 세계에서 그는 교통사고를 당한 직후 죽기 직전 상황이고, 살기 위해서는 테르비스 세계를 구해야하니까.
세계를 구하는 수단은 루체를 통해 이뤄낼 수 있으며, 주인공은 '자기가 살기 위해 세계를 구하는' 계약을 맺었다.
따라서 루체 문명을 이룩한 테르비스 세계에서, 루체를 통해 여신을 찾아 나서는 서사를 지닌 게임 테르비스에서는 [루체]야 말로 세계관의 핵심을 관통하는 단어다.
하지만 스토리를 진행하면서 테르비스 세계를 특별하게 만드는 [루체]가 매력적으로 다가오질 않았다.
테르비스 세계의 사람들은 마물을 물리치는 루체를 중심으로 문명을 세우고 살아가는데, 이 마물 퇴치 시스템인 루체가 말썽을 일으키기 시작해서 세계에 변화가 다가온다는 걸 알 수 있다. '신이 우리를 버렸다'는 종말론적인 소문이 돌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런 설정이 있으면 뭐 하는가?
방금 테르비스 세상에 내던져진 주인공은 복잡한 설명을 싫어한다.
그의 자각몽을 자주 꾸는 그는 무언가를 집중해서 이야기를 받아들이는 걸 싫어하는 지, 자기가 목표로 삼아야 하는 루체에 대해 알아볼 의지를 크게 가지지 않는다.
심지어 그의 곁에는 여신의 대단함과 신의 힘을 수련하며 살아온 세실리아와, 루체 전문 연구원인 도로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래 그럴 수 있다.
집중하기 어려워하는 고등학생이 이세계에 던져지는 이고깽에서 고등학생의 철없음과 시원시원한 행동력은 소위 말하는 클리셰처럼 이해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구현자의 얕은 이세계 적응력은 그를 통해 게임을 플레이하는 유저의 이세계 이해력과 직결되었다.
주인공부터가 테르비스의 세상을 알아가려고 하지 않는데, 필자가 어떻게 테르비스의 세상을 이해할 수 있겠는가?
그러다 보니 [루체 문명]을 이룩한 테르비스 세계관도 그저 그런 느낌이 들었다.
내가 이 세계를 사랑하고, 이 세계에 살아가는 캐릭터를 덕질할 힘이 나지 않았다.
혹시 필자가 스킵 버튼을 누른 게 아닐까 싶어서 다시 보기로 서사를 되짚어봐도, 여전히 아쉬움이 강하게 남았다.
루체를 통해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서사인데, 정작 루체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두리뭉실하게 묘사된다.
스토리텔링 방식이 끔찍하지만, 세계관 설정과 독특한 디자인으로 고유 IP를 확립한 명일방주를 예시로 들어보자.
[자극을 줄거라면 강렬하게]
근미래의 세계, 다양한 종족이 살아가는 어반 판타지는 다른 게임에서 찾아볼 수 있다고 치자. 하지만 이 세계에는 세계관을 관통하는 소재인 ‘오리지늄(광석병)’이 존재한다.
작품의 캐릭터들은 오리지늄으로부터 고통받고 있고, 오리지늄으로부터 기원하는 문명의 이기를 누리면서 오리지늄을 바탕으로 이룩한 문명 아래 살아간다.
프롤로그부터 오리지늄의 피해자인 감염자들의 폭동으로 강렬한 인상을 주며 시작한 명일방주의 스토리는, 프롤로그가 끝날 무렵 플레이어들에게 오리지늄의 위험함과 강대함을 피부로 느낀다. 도시 하나가 재앙으로 짓눌려 사라지는 걸 보고, 이 재앙의 근원인 오리지늄을 연구하는 로도스 아일랜드에 흥미를 가지게 된다.
‘오리지늄은 사회 폭동이 일어나고 도시가 무너질만큼 위험한데, 주인공 캐릭터는 이걸 연구하는 인간이구나’ 같은 생각이 들면서 적어도 명일방주 플레이어는 ‘오리지늄’ 이라는 단어에 강한 인상을 느끼게 된다.
필자가 보기에는 테르비스의 루체는 명일방주의 오리지늄처럼 강한 인상을 주지 않았다.
루체는 분명히 테르비스 세계를 특별하게 하는 것인데, 1챕터를 기준으로 강한 인상을 주지 못했다. 루체를 찾아 나서는 이야기인데, 정작 그 루체의 대단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정신이 산만한 궁도부 학생이 이세계에 떨어진 후, 루체를 만나는 순례길에 오르며 영웅으로 성장하는 스토리로 예상되는데, 정작 구해야 할 세계가 매력적으로 다가오질 않는다.
세계에 매력을 느끼질 못하니, 그곳에 살아가는 캐릭터들 또한 온갖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넘쳐나는 현대에서 돌출되지 않았다. 테르비스는 마치 일본 동네 중고 서점에 염가로 떨이하는 라노벨과 비슷한 매력도를 지녔다고 느껴진다.
필자는 오히려 현대 배경이 더 흥미로웠다.
오프닝 PV를 통해, 테르비스의 영향이 현대에 미칠 것이라는 암시가 보였다. 차라리 테르비스의 마법 같은 힘과 현상이 현대 판타지에 영향을 주고 그게 어떻게 세상을 바꿔 나가게 될 것인가를 기대하게 된다. 실제로 게임 속 세상과 규칙이 현대와 결합하는 현대 판타지, 소위 헌터 장르는 매력적인 소재이니 말이다.
하지만 현대 챕터는 최소 3막 혹은 5막쯤은 가야 나올 법이라고 생각된다. 그때까지 테르비스를 붙잡고 있으려면 테르비스 세상에 매력을 느껴야 하는데, 게임의 첫 인상이라고 볼 수 있는 첫 번째 챕터에서 고작 이 정도 설정과 서사로 유저를 붙잡기에는 부족하다는 인상을 느낀다.
물론 초반부는 재미없는데, 이후 읽어 나가면 재미있어요! 같은 말을 할 수도 있다. 실제로 필자는 ‘초반부는 더럽게 재미없는데, 중반 가면 괜찮아요’ 하는 게임을 즐기고 있다.
바로 명조다.
오픈 베타를 여러 번 거치는 동안 스토리가 계속 갈려나가고, 설정이 바뀌고 서사도 편집되어 역대 최악의 재미의 초반부를 지닌 게임이었다. 캐릭터 모델링이 수려하고, 전투 시스템이 재미있지 않았더라면 꾸준히 하지 못할 게임이었다.
다르게 말하자면, 명조급으로 고유한 기술력으로 차별점을 줄 수 없는 현 테르비스 개발 환경에서는, 명조처럼 게임 고유의 재미로 꾹 참고 스토리를 진행할 매력이 느껴지지 않는다.
아마 리세마라 시스템으로 취향 맞는 캐릭터를 뽑고, 초반부 이야기 서사가 좀 궁금해서 진행하다가 가챠 캐릭터를 뽑아야 스토리를 밀 수 있는 스트레스 구간에 진입할 경우 지갑을 여는 대신 게임을 지울 가능성이 다분한 게임이지 않을까?
[최종 요약]
세계관이 평탄하다. 루체라는 소재를 더 잘 살렸으면 한다. 루체를 통하여 제대로 된 매력적인 세계관 어필을 초반부에 성공하지 못하면, 스트레스 구간에 접을 것 같다.
세계관이 평탄하다 보니, 캐릭터들 또한 밋밋하다. 등장 인물 간의 서사가 제대로 이어지지 않는다. 아우렐리아와 도로시의 콩트를 제외하면 오타쿠들을 자극할만한 *덕 분비샘이 느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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